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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I couldn't do Independence Movement, But I Do Boycott Japan.







 

182.212.105.70 / 2019-08-03 13:12:20 작성




출처: https://m.blog.naver.com/davidj09/220935858892

대마도는 한국땅이다!


"6월 17일, 대마도의 날"
 
대 마도는 섬으로 본래 우리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들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놀기 시작했다. 대마도가 섬으로 경상도의 계림(鷄林-경주)에 예속되었던 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이 문적(文籍)에 실려 있어 확실하게 상고할 수 있다. (1419, 태종-세종의 선왕)

 
일 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젠 아예 없는 역사를 소설처럼 함부로 자신들의 교과서에 지어 써대고, 가르치려 들고 있다. 왜곡은 존재하는 또는 존재했던 사실을 비트는 행위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허위를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둔갑시키는 행위는 사기요, 심각한 범죄다. 일본 막장 극우 아베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자신의 정치적 지지와 기반이 쇠할때 그동안 눌려있던 저항들이 쓰나미처럼 덮쳐 또 하나의 씻을 수 없는 범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 필요하다.

한 국 외교부도 이젠 대마도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내놓고, '대마도 영유권' 관련 새로운 국검정 한국사 교과서에 기술을 강화함으로써 이에 강경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과 군사력의 균형이 깨졌을 때, 우리의 힘으로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현대사에서 이승만이 과감하게 선포했던 것처럼 제발 절지말고 당당하게 우리의 몫을 기술하도록 하자. 그리고 일본의 태도에 따라 '대마도 영유권'에 대한 분쟁의 수위를 맞춰줄 필요가 있다. 뼛속까지 배일파였던 이승만의 기개를 제발 절반 만이라도 우리 정부가 따라왔으면 한다. 이승만은 '이승만 라인(평화선)'을 선포하고 독도까지 지켜냈다. 이후 정부에서는 유약하게 계속 후퇴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을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접한 일본 정부의 반응은 위기감과 체념이었다고 한다(2008년 7월3일 일본 NHK 방영). 일본 정부는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에게 대마도 확보를 위해 필사적으로 로비를 했다고 한다.

▶ 1948년 2월17일에 열린 제204차 입법의원 본회의에서 입법의원 허간용(서북도 관선의원) 외 62명은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복귀시킬 것을 대일강화조약에 넣자는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 폭주로 연기되다 회기가 종결됨으로써 실현을 보지 못했다.

▶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8월 18일 성명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1948년 9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1949년 1월 7일에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또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에서 4월 27일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있다.

▶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시는 2005년 6월 17일, 마산시청 강당에서 '대마도의 날' 선포식을 가졌다. 마산시가 이러한 선포를 한 까닭은 대마도가 신라의 강역에 속하였다는 기록 등에 의거한 것이다.

▶ 2010년 9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 37명 의원들은 대마도 포럼을 창립하였다.

▶ 2013년 3월 22일에는 의정부시의회가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는 한편 대한민국정부차원의 반환 촉구를 요청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 삼국시대 초에는 쓰시마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 고려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 6세기 전반 아스카 시대에는 쓰시마 국주(對馬島主)가 일본왕부의 임명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평화 시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전쟁 시에는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속관계를 유지하였다.

▶ 고려 공민왕 때인 1368년 대마도주가 고려의 만호 벼슬을 가진 사신으로 파견된 이래 대마도는 600여 년간 조선과 대국휼소국(大國恤小國) 또는 조공회사(朝貢回賜)의 관계를 맺어온 속방(屬邦)이었다.

▶ 고려 창왕 때인 1389년 2월 경상도원수 박위는 전함 1백 척을 이끌고 쓰시마로 항진, 왜구를 토벌하고 왜구에게 포로가 되었던 고려인 남녀 1백여명을 구출하여 돌아왔다.

▶ 지리적으로 가까워 외교창구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하였다. 조선은 왜구들에 대해 회유책으로 통상의 편의도 봐주고 또 귀화 정책을 쓰는 등 우대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곳을 근거지로 한 왜구의 행패가 여전하자 세종 때인 1419년 음력 6월 조선의 세종이 이종무에게 명을 내려 군사 1만 7285명을 동원하여 대마도 원정을 하는 등 강경책을 쓰기도 하였다.

★ 대마도는 조선땅이다!


1860년대 조선시대 대동여지전도 - 대마도를 한국령에 포함시켰다. 지도의 축적은 1:92만 정도이다.


대동여지전도- 섬세하게 실측으로 그려진 울릉도와 독도(동도와 서도)


부산외국어대 김문길 교수는 2005년 3월 16일 1488년 당시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황제(영종)의 명을 받아 조선땅을 둘러본 뒤 작성한 견문록인 ‘조선부(朝鮮賦)’의 4~5페이지에 나와있는 ‘조선팔도총도(朝鮮八道總圖)’를 공개했다. 이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于山島)뿐만 아니라 대마도(對馬)가 조선의 영토로 자세히 표기돼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성종 때의 지리서이다. 노사신·양성지·강희맹 등이 편찬하였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년)에 이행, 윤은보, 홍언필이 중심이 되어 '새로 증보했다'는 뜻의 '신증(新增)'을 붙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완성하였다. 그 첫머리에 있는 조선전도인 <팔도총도>에 분명히 대마도가 조선땅으로 그려져 있다.


우산도(독도)과 울릉도의 위치가 바뀌었으나 역시 조선땅으로 명시되어 있다. 팔도총도는 당시 인지하고 있던 지리정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조선 강역의 대략적인 범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동해상에서 울릉도와 우산도가 있는 곳이 조선의 강역임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독도인 우산도의 면적이나 방향 등을 지도에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해의 울릉도 이외에 또 다른 한 섬인 우산도(독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557-1558 조선방역지도 - 대마도에 대한 영토의식이 반영되었다


1700년대 동국팔도대총도 - 울릉도, 우산도(독도), 대마도 모두 조선령으로 그려져 있다.


지리적으로도 대마도는 오히려 한국에서 더 가깝다. 앞으로 모든 한국사 교과서는 '쓰시마' 대신 '대마도'로 섬이름을 표기하며, 모든 지도에 독도에 준해서 대마도를 한국령으로 표시한다.


★대마도 영토주권 주장 및 반환요구 기사

동아일보 1949.1.8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




 


182.212.105.70 / 2019-08-03 14:13:51 작성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5/2008072501220.html


[Why] "대마도는 우리 땅" 역사 근거 많다 / 이한우 기자

조선초 태종 등 영유권 강력 주장 이승만 대통령도 "반환하라" 요구
"대마도(對馬島)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 (대마도) 의병들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 전적비(戰蹟碑)가 대마도 도처에 있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

1949년 1월 7일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첫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날 이승만은 한일국교재개를 언급하면서 대마도 문제를 꺼냈다.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라는 미국 요구에 맞서기 위한 지렛대로 대마도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사흘 뒤인 8월 18일 성명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그해 9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승만의 연두 기자회견 직후인 1949년 1월 18일 제헌의원 31명이 '대마도 반환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얼마 후 있게 될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회의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시킬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국내의 한 언론이 2005년 입수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정부는 미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j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it to the Republic of Korea)"고 밝혔다.

아쉽게도 같은 해 7월 9일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가 국무부에서 존 덜레스 미국대사를 만나 대마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전하자 덜레스는 "대마도는 일본이 오랫동안 통제하고 있고 이번 평화조약은 대마도의 현재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후 우리 정부도 더 이상 대마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조선 초에도 강력하게 제기됐었다. 그것은 고려 때 대마도에 대한 인식이 여진족과 탐라(제주도) 중간쯤이었기 때문이다. 고려와 접경한 여진족은 고려 관직을 받는 것을 영예로 생각했고 이 전통은 청나라가 성립되던 조선 중기까지 이어졌다.
탐라도 상대적 독립을 누리다 고려에 복속됐다. 반면 대마도는 상대적 독립을 유지했지만 고려나 조선의 관직을 얻고 생필품을 얻기 위한 교역을 꾸준히 요청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대마도를 다루는 고려와 조선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왜구의 침략이 계속되자 세종 원년(1419년) 상왕 태종은 대마도 정벌을 결심한다. 그때 밝힌 교유문(敎諭文)의 서두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대마도는 섬으로 본래 우리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들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놀기 시작했다."

태종의 교유문은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정벌이 끝난 후 대마도 도주에게 교유문에서 그는 다시 한번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음을 명확하게 밝힌다.

"대마도가 섬으로 경상도의 계림(鷄林-경주)에 예속되었던 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이 문적(文籍)에 실려 있어 확실하게 상고할 수 있다."

물론 대마도가 제주도나 거제도 같은 우리 땅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대마도가 우리에 조공을 바치던 땅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종 때 대마도가 일본 땅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15세기 초 태종 이방원의 대마도 인식과 20세기 중반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인식은 일맥상통한다.

이후 조선은 대마도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저 왜구의 근거지 역할만 해주지 않으면 좋다는 정도였다. 임진왜란이 대마도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양다리를 걸쳤던 대마도주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화를 지향했고 임란 직후인 17세기 초 일본의 막번체제에 편입됐다. 조선 전기 때만 해도 조선의 신하임을 당당히 밝혔던 대마도 도주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적대로 1870년대 완전히 일본화됐다. 지금 대마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 근거는 우리가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근거가 약하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에 비하면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고 근거도 있다.


182.212.105.70 / 2019-08-03 14:24:42 작성

출처: http://m.asiae.co.kr/view.htm?no=2010092813020004100


"대마도는 우리땅" 여야 의원 37명 대마도포럼 창립

[아시아경제 김성곤 기자]일본 대마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 고취를 목적으로 여야 국회의원 37명이 2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대마도포럼(대표 허태열)을 창립했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포럼 창립식에서 "대마도는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다"며 "대마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초대 제헌국회에서의 영유권 주장과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의 반환 요구 이후로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르러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은 일본이 불법으로 강점하고 있는 대마도를 조속히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실제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한국에 가깝고 대마도 주민의 혈통조사에서도 한국 혈통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대마도 영유권 주장의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내용을 설립 목적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포럼 소속 의원들은 향후 활동과 관련, 매년 상반기(3월)와 하반기(11월)로 나눠 정책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결의안 채택과 국민운동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또한 대만도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을 위해 지방자치단체화의 각종 연대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마산시는 이와 관련, 지난 2005년 독자적으로 '대마도의 날'을 선포한 바 있다.

대마도포럼은 아울러 연간 1-2회 정도 대마도 현지 답사를 통해 필요한 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물론 대마도 관련 배지 제작과 대마도가 포함된 대한민국 지도 제작 등의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은 대마도포럼 소속 회의 명단>

정회원 : 허태열, 박민식, 안홍준, 송광호, 이상권, 한기호, 김호연, 김성동, 이해봉(이상 한나라당) 백재현(민주당) 김용구(자유선진당) 김혜성(미래희망연대)

준회원 : 김동성, 현경병, 진성호, 이진복, 이애주, 이학재, 이주영, 김광림, 이한성, 김학용, 김선동, 김성회, 유재중, 이정현, 이종혁, 나성린, 권경석, 이혜훈, 허원제, 김학송, 정갑윤, 황진하(이상 한나라당) 조영택(민주당) 임영호 (선진당) 노철래(미래희망연대)


182.212.105.70 / 2019-08-03 14:28:28 작성

출처: http://m.news1.kr/articles/?1060695#ns1


의정부시의회 대마도 영유권 주장…日언론 발끈? / 이상휼 기자

강세창 의원 "대마도는 우리땅"

"대마도는 우리땅이다. 지리적으로 일본의 규수보다 부산과 더 가깝다. 조선 성종 17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등에 우리 영토라는 기록이 있다."

경기 의정부시의회가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 정부에 '즉각 반환할 것'을 촉구했다. 강세창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8명의 의원이 연서한 '대마도 실질회복을 위한 정부차원의 대응촉구 결의안'이 채택되자 전국적인 대마도 탈환론이 일고 있다. 급기야 일본 후지TV에서 강 의원에게 문의를 하는 등 양국간에 격론이 벌어질 조짐이다.

강 의원은 "내친김에 대마도 정벌에 나서겠다"며 "가만히 정부와 국회의원들을 믿고 있다가 독도는 물론 자주권도 빼앗길 판국"이라고 말했다. 시의회는 채택한 결의문을 박근혜 대통령, 국회의장, 외교통상부장관, 주한일본대사관에 전달할 방침이다. 대마도(對馬島)는 일본명 쓰시마로 불리는 695.9㎢ 면적의 섬이다. 특히 부산에서 49.5km 거리에 위치해 옛부터 우리나라와 관계가 깊다.

반면 일본 규수와는 147km나 떨어져 있다. 일본 후생성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대마도 주민의 혈통조사에서 B형 간염 유전자 물질 조사결과 발견되는 4가지 단백질 가운데 대마도 주민들의 혈통이 일본인보다 한국인과 거의 일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182.212.105.70 / 2019-08-03 14:32:14 작성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8479966&sid1=001


"대마도는 우리땅"…창원시 '대마도의 날' 12돌

제12회 대마도의 날 기념식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경남 창원시가 조례를 정해 기념하는 '대마도의 날'이 12년째를 맞았다.

창원시 대마도의날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7일 창원문화원 대강당에서 제12회 대마도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시민 200여명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박중철 추진위원장은 "대마도는 수많은 역사자료에 조선 영토로 기록된 땅이다"며 "대마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는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3월 18일 전국 시·군 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옛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조선시대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하려고 마산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출정한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해 기념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0년 7월 옛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를 포함한 통합 창원시가 출범한 이후에도 조례를 계승해 매년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 때마다 이종무 장군의 후손인 장수 이씨 종친회원들도 기념식에 참석한다.


182.212.105.70 / 2019-08-03 14:38:37 작성



182.226.43.150 / 2019-09-18 16:30:3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