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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목적에 대한 단상

다섯시부:
김시후, 송성연, 송성윤, 이두현 나오다.

달리기를 하였다.
검법을 20회 연습하였다.
팔굽혀펴기를 하였다.
버피를 하였다.

성윤이를 제외하고 시후, 성연, 두현이는 모두 도복을 입었다.
성윤이는 모두 +10회 더 했다.

성윤이가 도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검에 힘을 넣고, 자세도 낮추려하고, 팔굽혀펴기, 버피 모두 열심히 하였다.

시후, 성연, 두현이가 도복을 입고오니, 나도 마음가짐이 새로워 졌다.



ps. 후배에게 보내는 글; 운동의 목적에 대한 단상.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형상이 닮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원리를 닮아 있다. 이 말은 인간도 자연의 원리를 따른다는 말과 같다. 인간이 만든 물건들도 보면 기능적으로 인간을 닮아 있다. 파워, CPU, 메모리 등 컴퓨터 구조만 보아도 그렇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의 형상을 따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에서 신을 수염 난 할아버지로 그렸고 또 우리는 삼신 할머니를 꼬부랑 할머니로 종종 묘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형상화 한 것이지만 닮아 있음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또 너무 인간적으로 표현했다 생각하지만 표현을 통해 작가의 의도가 있을테니 쉽게 비평할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닮아있고 그것을 따른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전에 본 어떤 연세드신 분은 몸이 좋지 않다고, 무조건 몸에 좋은 것만 찾으시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또 내 친한 후배 하나는 살을 빼야 한다며 무조건 굶는다. 단기적으로 살을 급하게 빼는데 후에 보면 이전보다 더 쪄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어 몸은 더 살찌고 안좋아 보인다.

자연은 순환하고, 인간도 몸의 순환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간다. 나는 종종 이것을 아궁이에 빗대서 설명을 한다. 아궁이에 장작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굴뚝이 재로 막혀 있어 연기가 잘 빠지지 않거나, 아궁이 안에 재가 많이 쌓여 있다면 아무리 잘 마른 좋은 장작을 많이 넣어도 불길이 잘 살지 않는다. 또 아궁이가 재로 가득 찼다고 장작을 조금씩만 넣을 수 밖에 없다면 불때는 목적,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는 부족할 지도 모른다.

운동은 굴뚝을 청소하는 일이고, 재를 걷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먹어라! 태워라! 비워내라! 그리고 행하라!

while(삶) {
    먹어라!
    태워라!
    비워내라!
    do_something(view_of_value)
}

function do_something(my_view) {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어떤 일을 즐겨라!
    do something1 with my_view

    return individual_value
}

이것은 어떻게 보면 수학의 함수와도 비슷하다. 입력하고 출력하는 동안 기능을 하며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태우고 비워내는 일이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먹는 행위조차도 수련의 한 부분일 것이다. 또 이것은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명상 수련법 같은 경우에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모든 과정의 순간 순간을 마음으로 음미 감상한다.

조금 살찌고, 조금 마르고는 타고난 유전적인 형질일 수 있고, 체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몸매 관리 보다 중요한 것은 몸도 마음도 비워내는 일이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고 기능할 수 있다. 순환이 잘 되면, 목적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은 저절로 튼튼해진다. 아프다가 어느 순간에 낫듯이.. 그냥 인식하지 못하는 평안함 같은 것이다. 평소 인식하지 못하는 공기같아야 행복이다.

곡성 영화 중 한 대사가 떠오른다.
'뭣이 중한디?!'



 

182.226.43.150 / 2019-11-18 00:40:13 작성